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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스리랑카 여행 일곱째날 도시의 오아시스 캔디 왕립식물원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4-01-04  조회 : 2750
  • 캔디시 교외에 있는 면적 약600,00평방미터(약20만평)에 나무,약용식물,향신료식물과 특히 다양한 200여종의 난초로 유명한 캔디 왕립식물원에는 약4,000종의 식물들이 있다.

       
      
       
    식물원의 역사는 위크라마바후 3세(Wickramabahu III)왕이 남쪽의 꼿데 (Kotte)왕국으로 부분적으로 독립하며 마하웰리(Mahaweli) 강변에 캔디왕국의 터를 잡은 1371년 부터시작한다. 1780년~1798년 라자드히 라자싱해(Rajadhi Rajasinghe)왕이 이곳에 임시로 거주하면서 로얄가든( Royal Garden)으로 불리게 된다. 캔디왕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가고 1821년 영국인 안렌산드라문(Alexandra Moon)이 본격적으로 스리랑카 여기저기 있던 식물들을 옮겨와 식물원 조성을 시작하여 1843년 공식적인 식물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식물원에는 식민지시대 1901년 영국왕 조지 5세(George V)와 그의 아내 메리 여왕(Queen Mary)이 심은 캐논볼(Cannonball Tree)나무가 있으며 2차 세계대전시는 남아시아의 연합군 사령부가 자리잡기도 하였다.
       
    도시에 잘 발달되어 있는 박물관,식물원,도서관,공원등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물들은 국민 삶의 수준을 높여준다. 구한말시기 20대후반 젊은 지식인은 외교관으로 일본,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 보고 느낀점들을 정리하여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서양의 발달한 사회제도를 알리리 위하여 노력한다. 그 책에 식물원이 왜 필요한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들이 마음과 힘을 합하여 거둬 모은 돈으로 사들이기도 하고 국민들이 외국에 나다니다가 그곳의 물산들을 사 가지고와서 기증하기도 하면서, 세월이 오래 지나는 동안 여러 사람의 합력으로 이뤄진다.~국민들의 견문도 넓히려니와, 학자들의 공부를 크케 도와서 그들이 연구한 이치가 나라를 이롭게 하고 국민들에게 편리함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유길준 서유견문>서해문집


    드 넓은 캔디 왕립식물원 (Kandy Royal Botanical Gardens)에서 만나는 캔디시민들의 표정에서는 국민소득의 수십배가 되는 행복을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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