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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스리랑카 여행 일곱째날 뉴와라엘리야(Nuwara Eliya) 찻잔에서 바뀐 세계사!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4-01-06  조회 : 2982
  • 스리랑카 여행 일곱째날 뉴와라엘리야(Nuwara Eliya) 찻잔에서 바뀐 세계사!

    중국의 기원전 2700년경 전설속 이야기에는 농업과 의학의신으로 불리는 신농(神農) 이라는 황제가 산과들의 수많은 풀과 열매등을 직접 먹어 보고 인간들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분해 주었다고 한다. 신농은 여러번 독에 중독이 되었으나 우연히 끓는 물에 차 잎이 떨어저 들어간 찻물을 마시고 해독을 경험하게 되어 차의 효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처럼 차는 중국신화에 나올 정도로 중국인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차는 800년 경 실크로드를 통하여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특히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홍차는 유럽 상류층의 고급문화로 자리를 잡는다. 서양 식민지시대 차는 주요 무역품목으로 특히 중국과의 무역에서 큰 비중으로 차지 하였다. 유럽의 대중국 차 무역등에서 나오는 무역적자를 상쇄 하고자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게 되고 결국은 아편전쟁(1840∼1842)의 큰원이된다. 해양 패권을 장악하며 차 무역을 독점던 영국은 당시 재무부장관 찰스 타운젠트(Charles Townshend) 주도로 1767년 소위 타운젠트법을 통과시며 차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 국민들이 반발하며 발생한 보스턴차(1773년12월16일)사건은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까지 발전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부론>은 저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타운젠트의 아들 헨리 스코트을 데리고 2년간 유럽여행을 하면서 많은 유럽 지식인들을 만나면서 얻은 지식을 정리한 저서이다. 이 처럼 차는 격동하던 세계근대사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중국은 차나무의 국외반출을 금지 하였는데 1823년 영국 탐험가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가 인도의 아삼(Assam)지역에서 차 나무를 발견하여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차 농장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아삼지역의 차 나무는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홍차 즉 발효차(Black Tea)에 적당한 탄닌 성분이 많고 열대지역에서도 재배가 잘되는 종류이다. 차 나무의 종류는 중국의 시넨시스(C. sinensis var. sinensis), 인도의 아삼미카(C.sinensis var. assamica), 캄보디아의 캄보디에니스(C. sinensis var. cambodienis)등이 있다.

    현재 전세계 차 생산의 20%를 점유하는 스리랑카의 차 재배역사는 1824년 캔디왕실식물원에서 중국과 인도에서 들여온 차나무를 심었다고 하며 본격적인 상업적 차 농장은 영국인 제임스테일러(James Taylor)가 1849년 캔디(Kandy)동쪽 룰레콘데라(Loolecondera)에 77,000평방미터의 차농장으부터 시작한다. 제임스테일러는 1872년 차 공장가동을 시작하고 1875 처음 영국런던 차경매 시장에 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실론(Ceylon)티를 영국에 알린다. 1890년 영국의 백만장자 토마스 존슨톤 립튼(Thomas Johnstone Lipton)이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제임스테일러와 거래를 시작하면서 실론티는 유럽에서 차의 대명사 처럼 알려지게 된다. 특히 주요재배 품목이었던 커피나무가 1870년 커피나무 고사 병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차 재배는 스리랑카의 주요산업으로 자리 잡는다.

    차농장의 위치에 따라서 610m low grown, 610m~1200m medium grown, 12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high grown으로 치며 고도가 높을수록 고급품으로 한다. 대표적인 스리랑카 차 산지인 Uva, Dimbula, Nuwara Eliya 는 high grown 지역이다.


    스리랑카에서 만나는 차잎 한장속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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