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서 가장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세대는 30~40대 싱글여성들중 전문직에 종사하는 골드미스라고 불리는 계층 이라고 한다. 이들은 자기계발에도 적극적이어서 업무지식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지식을 넓이는데 투자도 적극적 이어서 1년에 한두번은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여행업 현장에서 본 이들의 여행패턴은 패키지여행객들이 그저 보고 오는 여행을 선호하는 여행객들 이라면 골드미스들의 여행은 한 곳에서 머물며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나 자신의 관신분야를 집중탐구하여 단순히 보는 여행이 아니라 아는 여행을 통하여 지식의 식견을 넓이는 여행을 선호하는데 차이가 있다.


여행업을 하면서 느끼는 부분은 해외여행만큼 지출이 큰 활동이 없다고 생각한다. 싸게 짧은 여행을 떠나도 수십만원을 훌쩍 지출해야 한다. 그렇기에 여행업을 하면서 여행객들에게 가장 강조 하는 부분이 그냥 패키지로 따라다니는 여행을 할 것이 아니면 이왕 큰 돈쓰고 가는 여행이니 현지에 대한 서적을 좀 보고 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하고 현지에서는 꼭 박물관을 다녀 보라고 한다. 여행중에는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여행도 사전지식 없이 간다면 수려한 풍경과 더불어 곳곳에 남아 있는 식민지 시대 서양풍경들이 눈에 들어 올수 있겠으나 좀더 사전지식을 가지고 간다면 세계사를 한번 돌아 보는 소득도 얻을 수 있다.
스리랑카 출장이 결정되면서 그동안 중국문화 역사 서적을 읽으면서 기억속에 자리잡은 역사속에 인상깊은 흔적을 남긴 본명이 마삼보(馬三寶)로 알려진 정화라는 인물이 떠 올랐다. 원나라시기 중국운남성에 정착한 이슬람의 후손으로 우리에게는 정화(郑和,鄭和,Zhèng Hé,1371년~1433년)로 알려진 인물로 주원장(朱元璋 명 홍무제 1328년~1398년)이 몽골의 원나라를 몰아 내고 대륙에 다시 한족의 나라로 세운 명제국 3대 황제 주체(朱棣 영락제 永樂帝, 1360년~1424년)시기 아프리카 대륙까지 원정을 다녀온 인물이다. 중국역사책 속에서 정화 원정대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스리랑카의 해변 도시 갈레에 상륙하여 비석을 남겼다는 글을 보아서 이번 여행에서 꼭 현장을 확인하고 비석도 직접 보고 싶었다. 콜롬보에 도착 하자마자 가이드로 나온 현지인과 지사장에게 비석의 위치를 수소문 했으나 정확한 소재가 파악이 안된다고 한다. 결국은 갈레의 박물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갈레도착 하자 마자 박물관을 찾아가니 입장료 뿐만 아니라 촬영비도 별도로 내야 한다고 한다. 1409년 2차 원정 당시 가저와 갈레에 세운 일명 정화보시비(鄭和布施碑)는 높이 145cm, 넓이 76cm, 두께 13cm 화강암 비석이다. 비석에는 한문, 타밀어, 페르시아어 세가지의 글자로 쓰여져 있는데 각 종교를 포용하고 찬양하는 내용과 원정대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비석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1911년 도로 공사중에 우연히 발견되어 세상에 정화 원정대 이야기를 알려주고있다.

아쉽게도 촬영한 갈레박물관의 비석은 모조품이었다.진품은 콜롬보박물관에 있다고 하는데 일행중 콜롬보 박물관을 방문했던 친구는 못 봤다고 한다?????
정화는 운남성 곤양주라는 곳에서 1371년 태어나 1433년 원정도중 호르무즈 지역에서 병사하여 귀국한다. 정화원정대 이후 대륙은 청나라 초기 강희제 시기 까지 해금정책을 시행하여 외부세계와 문을 닫고 지냈다.
당시 정화 원정대는 현시대에도 쉽게 구성할 수 없는 대규모로 역사속 기록에 보면 배의 길이가 44장(丈; 약 137m), 폭 18장(약 56m)에 이르는 대형 선박이 포함된 함선 62척에 총 승무원 2만 7,8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원정대로 구성되었다.
정화는 명3대 황제 영락제의 명령으로 아래와 같이 총 6차래 그의 손자 선덕제(宣德帝)의 명으로 1차래 원정을 떠났다.
제1차 원정 1405년 6월~1407년 9월
제2차 원정 1407년 겨울~1409년 여름
제3차 원정 1409년 겨울~1411년 6월
제4차 원정 1413년 겨울~1415년 7월
페르시아 만의 호르무즈와 아라비아 반도 남쪽의 아덴에 도달
제5차 원정 1417년 겨울~1419년 8월
아프리카 케냐 마린티(Malindi) 도달 사자, 표범, 얼룩말, 코뿔소 등 물품 가지고 귀국
제6차 원정 1421년 2월~1422년 8월
제7차 원정 1431년 12월~1433년 7월


정화 원정대가 스리랑카를 방문하기 천년전에도 중국 동진시기 승려인 법현(法顯: 337~422)은 육로를 통하여 당시의 천축국(인도)에 불경을 구하러 갔다가 육로귀국이 어렵자 399년 스리랑카에 도착하여 2년 정도 머물다 스리랑카에서도 불경을 구하여 해로를 통하여 귀국하였다.
스리랑카여행의 숨은 매력을 아마도 수천년을 이어오는 역사속 이야기들을 더듬어 보는 즐거움도 한가지가 될듯하다.
근대사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아메리카대륙을 발견 했던 당시 콜롬버스가 이끈 원정대의 산타마리아호는 길이 23m 폭이 7.5m 약 150톤급등 3척의 범선과 승무원 88명에 비교하면 정화 원정대는 엄청난 규모의 대함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