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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여행 추천 도서《정관정요(貞觀政要)》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1-09-15  조회 : 2392
  • 정관정요 (리더십의 영원한 고전)
    건오긍 저 | 김원중 역 | 글항아리 | 2010.03.25

    당태종 이세민[唐太宗 李世民, 599년: 수나라 개황(開皇)19년 1월 23일 ~ 649년: 당나라 정관(貞觀)23년 7월 10일]의 재위 시기를 정관의 치(貞觀之治) 라고 해서 중국 역사상 가장 황제가 정치를 잘 했다고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당고조 이연의 둘째 아들 이세민은 10대 후반에 이미 수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아버지를 따라 수나라를 명말 시키고 당나라를 개국 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 결국 626년7월2일 태자인 이건성을 죽인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을 통하여 태자가 되었으며 곧 2개월뒤 아버지 고조 이연의 양위를 받아 626년 9월 4일 당나라 2대 황제에 등극한 인물이다.

    정관정요는 태자인 형과 친족들을 죽이고 반 강제적으로 황제의 지위까지 양위 받은 당 태종이 어떻게 중국역사상 가장 정치를 잘 하고 백성들의 삶이 편안한 시기로 평가 받는 정관의 치 라는 통치시기를 이끌었는지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당시 국정을 함께 이끌던 신하들과 토론한 내용들과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신하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당나라를 통치하게 될 후세 황제들이 당태종을 본 받아 당나라를 영원히 발전시키고 이어지게 하기 위하여 측천무후 시기 사관으로 들어와 중종,현종의 간의대부를 지낸 오긍(吳兢 670~749)이 편찬하였다.

    이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인물인 위징(魏徵, 580~643)은 태자 이건성의 신하 였지만 현무문의 변을 통하여 정권을 잡은 이세민에 의해 중용되어 황제가 잘못 했을 때 옆에서 바로 잡는 직언을 하는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끝까지 충성을 받친 신하와 주고 받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당 태종은 644년에 “연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대신들을 살육했으며, 그 백성을 참혹하게 대하더니 지금 또 나의 명령을 위반하고 이웃 나라들을 강제로 침략하니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실패하고 당시의 전쟁 후유증으로 649년에 사망한다.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淵蓋蘇文, ?~665?)이 642년 고구려 제27대 영류왕을 시해 하고 영류왕의 조카를 보장왕으로 세우고 고구려의 정권을 장악한 시기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668년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에 의해 멸망 하게된다.

    당 태종을 깊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순하게 고구려에 패한 부분만을 크게 해석해서 형편없는 황제로 평가하고 있으나 이책을 읽어 본다면 왜 중국역사상 가장 높에 평가 받는 황제인지 이해를 할수 있을 것이다.

    당 태종이 정관의 치라는 최고의 통치시기를 이끌수 있었던 핵심은 인사였다. 국정 운영의 동반자인 신하를 선택 할 때 가장 핵심 참모로 태자의 사람 이었던 위징을 선택한 것 처럼 반대세력 편에 있었 더라도 능력있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파당을 떠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국정 동반자로 선택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적극적으로 신하들의 직언을 수용 하였으며 황실친족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국법을 지키는데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다.또한 무인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당시 황실 전용 도서관에는 수십만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데 밤낯으로 노력하였다.

    요즘 우리나라 관리들의 청문회를 보면 대부분이 관례 였다는 핑계로 국법을 어지럽힌 자들이 국정을 이끄는 요직에 어렵지 않게 임명되는 것을 볼수 있는데 1400년 전 당나라의 관리 선발 수준 보다도 못한 부분이 많은 듯하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도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들의 과거시험 필수 학습 도서 였으며 일본 지도층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정관의 치의 역사 현장 서안으로 가는 다양한 역사여행 준비해 드립니다.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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