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블로그
[중국]  영화 “최종병기 활” 속 역사 엿보기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1-09-21  조회 : 3706
  • 요즘 국내 개봉 국산영화중 연기파 배우 박해일이 주연한 “최종병기 활(活)”이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다. “최종 병기 활”은 조선의 역사 뿐만 아니라 한민족 역사중 가장 뼈아픈 교훈을 주는 전쟁인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니 먼저 병자호란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 하면 조금 더 영화가 재미 있지 않을까 싶다. 역사책에서 배운 병자호란과 관련한 이야기들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아닐까 싶다. 청나라는 중국을 통치한 최후의 이민족 이며 청나라 이후가 바로 잠깐의 국민당정부의 민국시대를 지나면 바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다.

    한반도 북부지역 즉 중원의 북동지역은 유목민족들의 주요 활동 무대로 중원 한족이 통치 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중원의 정권이 불안정한 시기 여러 유목민족 국가의 근거지였다. 당나라(618–907) 말기 지금의 내몽골 시라무렌 강 유역에 거주하던 몽골계와 퉁구스계의 혼혈족인 거란족은 91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통일하며 거란국 개국 후에 요나라(916~1125)로 바뀐다. 요나라는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698∼926년)를 멸망시키고 당나라 이후 중원을 차지한 송나라(960∼1279)와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요나라가 고려(918∼1392)를 1차 침략할 때 994년(고려 성종 13) 서희가 요나라 장수 소손녕과 담판하여 압록강이남 당시 고려의 서북쪽 영토을 얻어 강동 6주를 설치게 된다. 요나라 명말 무렵에 여진족 아구다(阿骨打)에 의하여 한반도 이북지역은 다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의 통치를 받다가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며 한동안 한반도 이북지역은 공백기를 맞이한다. 원나라 이후 들어선 한족의 명나라가 한동안 한반도 이북지역을 대부분 통치한다. 여진족은 한 때는 고려에 활•말•화살•모피등을 조공(朝貢) 하며 고려와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조선(1392-1910)시대 초기 세종(世宗, 1397-1450)의 북방정책으로 4군 6진을 개척하며 북방 지역 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이순신장군도 1584년경 한때 이곳에서 국경을 수비하는 군관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1598)시기 명나라는 내부적인 많은 문제가있 었으나 대규모 조선파병을 하며 국력이 급속도로 기울게 되며 이시기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병자호란을 일으킨 민족이 바로 여진족 출신 누르하치가 청나라가 세우던 시기이다. 여진족을 부르는 명칭은 추전국시대-숙신(肅愼), 한(漢)-읍루(挹婁), 남북조시대-물길(勿吉), 수(隋)•당(唐)-말갈(靺鞨),송나라,명나라-여진(女眞) 불렸고 청나라 때는 만주족(滿洲族)이라고 불렀다

    건주여진 출신 누르하치(努爾哈赤 여진말로 멧돼지가죽 이라는 뜻 이라함-청태조)는 1589년 건주여진 부족 전체를 통일하였고 흥경을 수도로 1616년 마침내 금나라를 이어 받는다 하며 후금을 개국하였다. 후에 여진을 만주(滿洲)로 바꾸고 팔기군과 만주문자 창제 하게 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중원지역으로 이동 하며 명나라를 압박하는데 1621년 랴오둥 1621년 선양 계속 서진을 하다 1626년 중원으로 들어 가는 길목 영원성(현재의 흥행성 현성)을 포루투갈에서 도입한 홍이포로 방어 하던 원숭환(원숭환(袁崇煥 1584-1630)에게 패하며 부상으로 1626년 9월 사망한다.

    이후 누르하치가 낳은 16명의 아들 가운데 8번째 아들 홍타이지 태종(太宗, 1592~1643)가 등극 하며 후금을 청(1636∼1912)으로 개칭한다. 당시 임진왜란 이후 쇄잔해진 국력과 더불어 조정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어수선한 조선은 1627년 1차 후금의 친입시 후금을 형제의 국가로 받들기로 하자 물러 났으나 본격적으로 명나라 공략에 나서는 청나라 2대 청대종 홍타이지는 국제정세 판단에 어두운 조선이 지속적으로 명나라와 신하관계를 유지하자 후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조선에 636년 4월 후금을 청으로 고치고 신하의 나라로 할 것을 요구 하였으나 인조 (仁祖, 1595~1649, 재위 기간 1623~1649)는 거절한다. 1636년 12월2일 청 태종은 12만대군을 이끌고 수도 선양을 떠나 9일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략한다. 당시 의주부윤 임경업이 지키고 있던 백마산성이 주요 통로 였으나 주력 부대가 기마군단을 이용하여 빠르게 우회하여 14일 개성을 통과 16일 남한산성 포위하고 함락하게 된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하였으나 너무 급박하여 왕자등만 강화도로 피신하고 12월14일 남한산성 으로 피신하였으나 극심한 추위와 청군의 포위로 50일분량의 식량의 바닦 보급의 문제와 강화도로 피신한 왕자들이 포로가 되는 상황에서 더 못 버티고 1월30일 항복 하고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를 올리게 된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아래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① 청나라에게 군신(君臣)의 예(禮)를 지킬 것, ② 명나라의 연호를 폐하고 관계를 끊으며, 명나라에서 받은 고명(誥命)•책인(印)을 내놓을 것, ③ 조선 왕의 장자•제2자 및 여러 대신의 자제를 선양에 인질로 보낼 것, ④ 성절(聖節:중국황제의 생일)•정조(正朝)•동지(冬至)•천추(千秋:중국 황후•황태자의 생일)•경조(慶弔) 등의 사절(使節)은 명나라 예에 따를 것, ⑤ 명나라를 칠 때 출병(出兵)을 요구하면 어기지 말 것, ⑥ 청나라 군이 돌아갈 때 병선(兵船) 50척을 보낼 것, ⑦ 내외 제신(諸臣)과 혼연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할 것, ⑧ 성(城)을 신축하거나 성벽을 수축하지 말 것, ⑨ 기묘년(己卯年:1639)부터 일정한 세폐(歲幣)를 보낼 것 등이다

    청나라는 조선으로부터 항복을 받은후 1643년 갑작스런 홍타지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 9남 세조인 이지슌다산 순치제(順治帝, 1638~1661)는 지속적으로 서진하여 1644년 이자성의 난등으로 기울어진 명나라를 멸망 시키고 중국을 최후로 통치하는 소수민족이 된다.

    병자호란시 청나라는 조선의 양민들 특히 사대부여성들을 전리품으로 보고 약50만 가량의 조선인(조선 초기 한양 전체 인구가 10만이 안되었다고 한다)들을 강제로 청나라로 데리고 갔으며 그들은 풀어 주는 대가인 속가(贖價)로 보통 1인당 25∼30냥 주로 150∼250냥씩 받고 돌려 보냈다고 한다. 당시 물가가 쌀1가마(80kg) 1냥(1냥은-10전-100푼) 가량 있었다고 하며 조선정부 차원의 배상금 지불은 보다는 주로 돈 많은 사대부들이 속가를 주고 포로들은 귀국시켰다.(지금 쌀 한가마니는 180,000원 가량한다)

    이 영화는 바로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시기 무인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리며 가족이 몰살 당하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어린나이에 동생을 책임지게된 남이(박해일역)가 13년후의 병자호란시기 청나라로 끌려가는 여동생 자인(문재원역)을 되찾기 위해 청나라 최정예군대인 대장인 쥬신타(류릉룡역)군사들과 싸우는 이야기이다. 영화에는 자인이 청나라 왕자 도르곤의 수청(守廳)거부 하며 싸우는 위기의 순간 남이가 등장하여 왕자 도르곤을 살해하고 자인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쥬신타는 왕자를 살해한 남이를 끝까지 뒤 쫒으며 최후의 대결을 하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도르곤왕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도르곤은 누르하치의 14번째 왕자로 용맹하며 지략이 뛰어나 아버지 사후에도 태종과 세조 순치제를 보좌하여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임진왜란후 얼마안가 격은 병자호란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힘들었으며 특히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부녀자들중에는 청나라 군인들에 의해 임신한 상태에서 귀환하여 자식을 낳는 경우도 있었으며 사회적인 멸시와 냉대로 자살하는 귀향 부녀자들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귀환한 부녀자를 욕하는 말로 화냥년(還鄕女)이라 불렀고 이렇게 태어난 자식을 오랑케자식이라 하여 호로(胡虜)자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라가 무능하여 전쟁포로로 잡혀가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한 부녀자들의 억울함은 끝이 없었다. 조정에서는 귀향 부녀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한강,평안도-대동강,황해도-예성강,강원도-소양강,충청도-금강,경상도-낙동강,전라도-영산강, 평안도-압록강에 장소를 정해 정절을 돌려 주는 강이라는 회절강(回節江)라고 지정하고 이곳에서 목욕을 한 부녀자들을 차별하는 백성을 엄벌로 다스렸다고 한다. 지금도 일제시대에 만주지역으로 피난가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일제에 저항한 가족들의 후손이 많은 조선족동포들은 보는 사회적인 시각은 그리 높지 않다.
      
    이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영상적으로도 빠른 스토리전개와 편집 더불어 활이라는 소재의 참신성도 있겠지만 그동안 역사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적군은 항상 형편없는 실력의 가지고있어 통쾌하게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쥬신타가 왕자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분과 끝까지 남이와 대등한 실력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설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청나라는 결국 한족의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대륙을 통일해 280년가까지 통일 유지한 실력있는 소수민족이었다.

    그냥 오락영화도로 재미 있지만 당시 시대 상황과 지금의 우리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국가간의시대상황을 조금 생각하며 관람하면 재미가 더 할듯하다.


    만주족 여진족이 말 달라던 곳으로 떠나는 역사여행,,,,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