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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여행-추천 도서 관중(管仲)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0-07-27  조회 : 2270
  • 중국 역사는 황하문명의 발상지로 알려 지고 있듯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오랜 역사 많큼이나 수 많은 영웅들이 나고 살았다. 특히 중국이 본격적인 통일의 시대에 들어 가기전 춘추시대 대륙에는 수 많은 나라가 존재 하였고 그 나라 수 많큼 많은 영웅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친구간의 우정과 믿음 신뢰를 대표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두 주인공 관중과 포숙도 이 시대에 제나라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다. 제나라는 낚시꾼을 뜻하는 강태공 태공망 강상(太公望 姜尚)이 주의 문왕에 의하여 발탁이 되어 후대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 시킨후 시조로 봉해진 나라이다. 태공망 이라는 별칭은 무왕의 아버지 문왕 태공(太公)이 오랬동안 찾던(望)인물이었다는 뜻이라 한다. 상(은)을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패자의 나라 주(周)(기원전 1046년-기원전 256년)시기 수 많은 제도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관중(管仲) 관이오(管夷吾)와 포숙(鮑叔) 포숙아(鮑叔牙)는 제나라가 혼란하던 시기인 희공(僖公)에 이어 양공(襄公)이 즉위하자 소백은 포숙과 함께 거나라로 도피 한다. 양공이 민심을 잃고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자 공자 규는 관중과 함께 노나라로 망명하였다. 왕위를 찬탈한 공손무지가 몇 개월 만에 갑자기 죽자 공석(空席)이 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하여 공자 규(糾)와 소백(小白)이 다투던 때 관중은 공자 규의 부(傅)였고 포숙은 소백의 부로 서로 정치적인 정적 이었지만 끝내는 나라를 위해서 힘을 합처 제나라를 패자의 나라로 부흥시킨 인물들이다.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중에 가장 핵심적 이라고 할수 있는 부분은 바로 포숙이 소백을 제나라의 환공으로 왕좌에 등극 시킨후 바로 환공에게 자신은 관중 보다 부족하니 관중을 환공의 참모로 천거 한 것이다. 당시 풍습으로는 자신이 모시던 군주가 정적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 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풍습으로 관중이 모시던 공자 규가 포숙이 모시던 소백에 의하여 제거 되었을 때 포숙은 재빨리 노나라에 망명중인 관중을 빼내 온다. 춘추시대 인재를 찾아 등용하려는 권력자들의 노력은 지금 시대에 보더라도 큰 교훈을 준다. 당시 관중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정적이었던 환공의 신하가 된 것에 대하여 일부 역사가 들은 비평을 한다.

    유명한 공자의 제자중 하나인 자로는. “제나라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거늘, 소홀은 그를 따라 죽었으나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은 어질지 못하다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수 많은 위인들이 관중의 업적을 찬양한다.

    공자(孔子)
    환공이 비참한 수단에 강요하지 않고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이 있기에 가능했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하여 제후의 맹주가 되게하고 천하의 질서를 회복시켰으며 그 은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비자(韓非子)
    지금 나라 안의 백성들 모두가 관중의 법을 모아놓은 책을 집집마다 가지고 있으며 정치를 말한다
    사마천(司馬遷)
    관중은 정치를 할 때 백성들이 원하면 그것을 해주었고, 원하지 않을때엔 실행하지 않았다.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돌이켜 공으로 만들고 저울질의 균형처럼 신중히 했다

    관중과 포숙은 한 때 서로 동업을 하였는데 당시 관중의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수익금을 관중이 더 많이 챙겨으나 포숙은 불평을 하지 않고 관중을 이해해 주었다고 한다,
    포숙은 모든 노력을 다하여 환공의 등극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정작 환공이 대권을 잡은 다음에는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고 한 때는 정적이었던 관중을 천거하여 스스로 권력의 중심부에서 물러났다. 당시 정치인들의 수준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렸다고 울고 불고 하는 지금의 정치인들 보다 훨씬 높다는 생각이 든다.

    관중은 나를 낳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고 하였다고 한다.

    수 천년 전 제(濟)나라의 명재상(明宰相)으로 아직까지 그 이름이 떨치는 관중이 펼친 정치의 핵심은 우선 백성들이 편하고 풍족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관중의 정치사상을 가장 잘 물려 받는 중국의 최근 정치가는 등소평 이라고 생각한다.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의 핵심은 우선 백성들 스스로 풍족한 삶을 누릴수 있도록 국가정책을 변화 시킨 것이라고 본다.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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