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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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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자도 아니고 불가의 법도도 잘 모른다. 한반도에 4세기 후반 삼국시대부터 공식적으로 전파되어 1392년 조선왕조가 개국하며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주자학을 국가적 통치이념으로 정하기 전까지 불교는 한반도 사람들의 생활문화 일부분 이었고 현재까지도 우리 생활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세종대왕님이 창제하고 1446년 반포 하였으나 448년 만인 1894년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칙령 1호로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격상하기 까지 모든 공식 기록은 한자로 기록되어 있어 한자를 모르는 현대 우리국민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나는 종교를 떠나 생업으로 영어관광통역안내사, 역사와 문화 전문여행상품을 개발하는 여행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직업상 다양문화, 역사를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이다.
운허 스님(1892~1980)은 "사전 없이 불교 교육 없다"는 목표로 최초한글 『불교사전』을 1961년 펀찬했고 1964년 동국역경원을 설립해 고려시대 강화도에서 판각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의 한글역경 사업을 시작했다. 운허 스님의 제자였던 이 책의 주인공인 월운스님은 1965년 부터 역경위원으로 참여 1993년부터 동국역경원장 소임을 맡아 번역 사업을 주도했고 마침내 2001년 총 318권에 이르는 '한글대장경'을 완간했다.
《팔만대장경》 한글역경을 끝내신 스님은 역경원후원회 돈오거사 김순경 씨가 단독부담해 대관한 장춘체육관에서 《동국역경원한글대장경 완간회향법회》 국민들에게 보고 하는 법회를 2001, 9, 5 그 의미에 맞게 거행했다. 이책은 스님 한분의 생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생활속 저변에 남아 있는 근대 한국불교 역사를 돌아 보고자 하는 관계자들이 필독으로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매년 스님을 모시고 답사를 다녀 종종 뵙다. 여러가지 이유로 역경원원장을 사임하셨다는 소식에 찾아 뵈니 “내가 이제 힘이 없어!”라는 말씀도 하시고 연세도 드시며 해외답사를 못 가시고도 가끔 찾아 뵈었다. 90세 망백년 행사에 찾아 갔으나 축하 귀빈하객들이 많은 관계로 조금 지나 그동안 모시고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앨범으로 만들어 생신축하 선물로 드렸더니 은근히 웃으셨다.


문득문득 한번 뵈어야지 생각나던 도중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장지 밤에 스님 절의 홈페지를 방문하니 이틀전 2023년 6월 16일, 세수 94세, 법납 74년으로 열반(원적)에 들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홈페지에 나오는 구좌로 화목 시주(火木 施主)금을 송금하고 이억만리 땅에서 마음속으로 극락왕생을 빌었다. 스님의 다비식은 2023년 6월 21일 수요일 오전 11시에 봉행되어 따르는 분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나와 월운 스님과의 첫 만남은 1994년경 외숙모이신 책에도 나오는 1962년 가사불사를 주도해 전쟁중 화재로 어려운 봉선사의 재정운영에 크게 기여한 강화도 출신 정각심 안효범보살님이 《팔만대장경》 역경을 하시는 스님이 중국여행을 계획 하신다고해 동국역경원 사무실에서 중국답사를 준비하시는 여행손님으로 만났다.


그리고 현재 여행사 창업후 따저 보면 108일은 넘는 날짜를 한솥밥 먹으며 여러나라 답사를 다녀온 인연이 있다. 언젠가 스님에게 “스님 여행사도 많은데 왜 항상 저에게 맡기 십니까? 하고 물었다 스님은 “ 한사장하고 다니면 편안해!”라는 답을 주셨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그동안 손님에게 받은 가장 높은 상찬이었다.


나는 우리정부가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자유화 하고 현장에서 습득한 여권, 미국, 일본의 비자수속 정보, 출장으로 습득한 각 나라의 현지여행정보를 PC 통신 제공하다 인터넷이 생소한 시절 1995년 인터넷으로 정보를 제공한 경험이 있었다. IMF를 맞아 퇴사 하고 우리나라 1호 인터넷여행사 'W'를 창업했으나 여러사정으로 현재 운영하는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고있다. 당시 경쟁하던 여행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나 현재는 'W'는 'H'여행사 자회사 소속으로 되어 있다.
정부가 바뀌고 이제는 다양한 공식정부회의가 국민들에게 생중계되어 구중궁궐 같던 관청의 높으신 관리들의 토론을 직접 듣게 된다. 가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등 여행업 관계자들이 대통령과 정책토론하며 제시하는 의견을 보면 오랜기간 업계현장에서 근무한 사람으로 듣기 정말 한심한 수준의 발언들을 하고 있어 연간 수천만이 방문해 대한민국에서 우리국민들과 몇일간 한솥밥을 먹는 외국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가치가 제대로 전달 될지 의구심이 든다.

전쟁중 희생자들을 모신 범어사 ‘육군 영현안치소'를 갑자기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 주한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벤 프린트 장군을 만난 스님의 건의사항들은 어찌 보면 현재 한국불교의 기초를 다져 놓은 것 같다.
첫째.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된 직후 실시한 토지개혁으로 사찰 토지가 하나도 없게 되니, 부처님께 올릴 공양미도 없고, 노승들이 병이 나도 간호할 쌀도 없다. 그러니, 사찰 토지는 토지개혁 대상에서 제외시켜 달라
둘째. 젊은 승려들을 무조건 징집해 가니, 부처님 시봉을 할 인력도 없고. 노승들이 아파도 시중들 사람도 없고, 지붕에 풀이 나도 풀을 뽑을 수도 없으니. 사찰문화재는 곧 소멸될 것 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승려들만의 책임이겠는가? 그러니 젊은 승려들의 징집을 전통문화 보존 차원에서 면제해 달라
셋째. 현행 종법이 승려의 대처를 허용하고 있고 그들이 사찰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실질적으로 가정을 떠나 수행하는 비구집단은 그들의 지배하에 놓여 수행공간 조차 차지하기 어렵다. 이점을 국가에서 조절해 달라
넷째. 주한미군에 관한 문제인데, 미군들이 휴가를 이용해서 사찰을 찾는 것은 환영하나, 풍속이 달라서 보기에 거북한 일이 종종 생긴다. 그러므로 미군 당국에서 일정한 교육을 시켜주면 좋겠 다. 예컨대 공개된 장소에서 지나친 애정 표현을 하는 일, 크고 작은 건물에 신을 신은 채 들어오는 일 등이라고 했다.
불교사전 출판비 관련 희사건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제의했더니. 스님께서도 "그게 좋겠군" 하셨다. 이는 [능엄경], 계환소에 인용된 "야학부추 속어반장 " 즉 배를 도둑맞지 않으려 깊은 산골에다 감추어 두었는데도 눈 깜짝 사이에 날랜 도적에게 몽땅 도적을 맞았다는[장자]의 우화인데, 수광 거사가 [불교사전] 출판비를 주겠다고 했던 마음이 오래가면, 자칫 달라질까 하는 기우에서였다.

정각심 외숙모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편하게 편하게 마음을 쓰셨던 내 어머니 전옥전여사님의 마음 덕분이다. 어머니는 늘 "사람구실이 어디 쉬운줄 알아!"하는 충고 말씀 하셨다.
似僧非僧 似俗非俗 (사승비승 사속비속) 虛頭長老 月雲靈駕 (허두장노 월운영가)

이제는 세분 모두 안계신다. 은혜를 갚아야 하는 모든 분들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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