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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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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질문이 좋아야 AI의 답변도 바르게 나온다. 그리고 질문자가 그 답변이 맞는지 알아야 이용이 가능하다.
국가를 다스리는 절대 권력자의 모습으로 합당한가?
최고권력자에게 사적인 것은 없다. 오로지 공복으로 일해야 하는 의무만이 있다. 이러한 막중한 공공의식이 없으면 정치인 또는 국가공무원으로 세금을 받을 생각 하지 말고 사익을 쫒는 사기업에 종사해야 한다. 요즘 우리국민들은 지난 몇년간 국민의 선택을 받고 당선된 최고권력자가 출신학교, 근무인연 지인들로 사조직을 만들어 공무는 뒤로 하고 국방을 책임지는 장성, 국정을 담당하는 장관등을 수시로 불러 음주자리를 만들며 국정 운영했던 파렴치한 자들의 모습을 재판방송을 통해 지켜보고 있으나 일부는 아직 그러한 권력자 모습을 보고도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600년을 버티며 존속하는 동안 임금은 국정운영 고민을 논술형문제로 과거문제를 출제하고 현재 AI수준 수험생들에게 답을 제출 받았다. 수험생들은 과거 역사속 관련 사례와 현재의 문제 그리고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답변으로 정리해서 제출한다.
중국에서 유래한 조선시대 국가이념 성리학을 이해 하려면 중국의 상황오제 신화의 배경은 알야야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가장 모범으로 생각하는 요(堯) 임금, 순(舜) 임금, 우(禹) 임금의 정치 활동은 가장 중요하다.

삼황(三皇)
복희씨(伏羲氏): 팔괘를 만들고 수렵·채집 및 어로법을 전수
신농씨(神農氏): 농사짓는 법과 의약(약초, 차)을 개발
여와씨(女媧氏): 인류를 창조하거나 불을 발견

오제(五帝)
황제 헌원(黃帝 軒轅): 삼황오제의 핵심이자 중화민족의 공통 조상으로 추앙받는 인물
전욱 고양(顓頊 高陽): 법도를 정하고 신과 인간의 질서를 확립
제곡 고신(帝 高辛): 천문과 달력을 정비하여 백성의 삶을 안정시킴
요임금(堯): 태평성대를 이룬 덕치의 대명사
순임금(舜): 요임금의 뒤를 이어 선양(禪讓) 방식으로 정치를 펼친 성군


우박은 서리도 아니고 눈도 아닌데. 어떤 기운이 모인 것인가? 크기가 말 대가리만 하기도 하고 달갈만 하기도 해서 사람이나 새. 짐승을 죽인 일은 또 언제 일어났는가?
이런 일은 전란이 심한 세상에 일어 나기도 하고 재앙을 일으킨 임금을 경고하려고 일어나기도 했으니 역대에 경계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은 굳이 누누이 진술하지 않아도 미루어 알 수 있을 터입니다.이이(李珥, 1536년 12월 26일~ 1584년 2월 27일)
간혹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하늘의 기운이 어그러진 탓인가 인간사가 잘못된 탓인가?
제가 들건대 "임금은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함으로써 사방을 바르게 해야 한다." "마음이 조화로우면 몸이 조화률고. 몸이 조화로우면 기운이 조화롭고. 기운이 조화로우면 천지의 조화가 감응할 것이다" 했습니다. 이이
4월 초파일은 부처의 생일이다. 옛날에는 연등 놀이가 없었는데, 우리 풍속에 등을 내걸고 술을 진탕 마시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서역파에는 욕불재가 있고 우리 땅에는 연등회가 있는데 정당한 숭배 대상이 아닌 귀신에게 아첨하는 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점차 나쁜 풍속이 되어, 등을 내걸고 밤새도록 술을 마셔 대며 몸가 짐을 단속하지 않고 흐트러지며 난잡해졌습니다. 이이

역사란 한 시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위로 군주와 신하의 말과 행실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 부터 아래로 마을과 골목의 풍속에서 더러운 것과 고상한 것까지 숨김없이 정직하게 써서 장 래에 보이는 것이니 그 의의가 엄하다.
가만히 생각건대 역사가의 직분은 어럽고, 그 임무는 중합니다! 군주와 신하의 말과 행실에서 득실뿐만 아니라 정사와 풍속의 아름 다움과 추함이 사관에게 모이고 그것을 글로 써서 천하에 전하고 후세에 보여 권선징악의 도구로 쓰게 하니, 그 직분이 어렵지 않으며 그 임무가 무겁지 않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천하의 선비가 되어 붓으로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자가 학문은 있으나 재능이 없으면 본래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없고. 재능은 있으나 절개가 없으면 또한 그 임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학문과 재능과 절개를 다 갖추고 조금도 홈결이 없어야만 비로소 사관의 직분을 감당하고 사관의 임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황준량(黃俊良, 1517년 ~ 1563년)

가만히 생각건대 정치의 전말을 엮고 사건을 끝까지 서술해서 한 시대의 표준 전적으로 비치하는 것이 사관의 직분입니다. 그러나 재능이 넉넉한 자가 이를 맡아야 합니다. 시비의 실정에 밝아서 가치판단의 기준을 장악하고 만세의 권계를 밝히 제시하는 것은 사관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도가 정직한 자라야 할 수 있습니다. 직분은 책임 의식이 없어서는 안 되고. 책임 의식은 직분에 걸맞아야 합니다. 박승임(朴承任, 1517년 ~ 1586년)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 참으로 한심하기 때문이다. 어떤 게 하면 선비의 습성이 아름다워지고 인민의 마음이 바르게 되며 풍 속이 두터워지고 염치 있게 행동해서 정치의 도가 융성한 옛날처럼 성대해지고. 이에 군주와 스승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 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학문을 강론해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서 정치를 하십시오. 강직하고 분명하며 정직한 사람을 취해 보좌하게 하고. 순후하고 염치 있는 사람을 표창해 풍속을 장려 하며. 글재주를 중히 여겨 기량과 식견을 중시하십시오. 그러면 지조와 절개가 있고 의기 넘치는 선비들이 조정에 줄지어 모여들어서, 임금님이 밝은 덕을 베풀고 교육하는 근본을 튼튼히 하도록 돕고 군주 와 스승이 백성을 이끌어서 교화를 이루도록 도울 것입니다. 정철(鄭澈, 1536년 12월 18일(음력 12월 6일)~1594년 2월 7일(1593년 음력 12월 18일))
臘月初六日夜坐 (납월초육일야좌) 섣달 초엿새 날 밤에 앉아서
旅遊孤島歲崢嶸 (여유고도세쟁영) 외로운 섬 나그네 신세에 해는 바꾸려 데
南徼兵塵賊未平 (남요병진적미평) 남쪽에선 아직도 적을 평정하지 못했네
千里音書何日到 (천리음서하일도) 천리 밖 서신은 언제나 오려는지
五更燈火爲誰明 (오경등화위수명) 새벽녁 등불은 누굴 위해 밝히는가
交情似水流難定 (교정사수류난정) 사귄 정 물처럼 흘러 머물기 어렵고
愁緖如絲亂更縈 (수서여사난갱영) 시름은 실오라기처럼 더욱더 어지럽네
賴有使君眞一酒 (뢰유사군진일주) 원님이 보낸 진일주를
雪深窮巷擁爐傾 (설심궁항옹노경) 눈 덮인 벽촌에서 화로 끼고 마시네
<1593년 강화도 정철>

황제께서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짐이 듣건대 [역].에서 이르기를 "군자는 옛 성인의 말과 행동을 많이 알아 그것을 본받아 덕을 쌓는다." 했다. 대체로 일을 함에 반드시 옛일을 모범으로 삼는 것은 제왕이 숭상하는 바다. 옛날에 천하를 소유한 자를 황. 제 .왕. 패 라고 부른다. 이 넷은 지위가 같고 작록을 내리며 행정구역을 설치하거나 폐지하고 사람을 살리고 죽이며 상벌을 내리는 행정의 권한이 같은데 유독 칭호만 다르다. 그렇다면 황이라. 제라. 왕이라. 패라 하는 명칭의 의미를 알 수 있겠는가?
첫째. 군주의 명칭이 다른 까닭과 각 명칭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 니다. 신이 듣건대 '태극이 갈라져서 양의(음과 양)가 생겼다' 합 니다. 이에 하늘과 땅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삼재가 됩니다. 이에 천황. 지황. 인황이라 는 칭호가 생겼습니다.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자는 왕이고 힘으로써 인을 가장하는 자는 패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곡(李穀, 1298년 8월 25일(음력 7월 18일)~1351년 1월 28일(음력 1월 1일))

백성의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하는 데는 세금을 공평하게 매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금을 공평하게 매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백성이 세금 내기를 고통스러워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세금 징수가 생산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생산이 세금을 내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인가?
셋째. 세금을 공평하게 매기고 걷는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듣기에는 선왕이 세금을 제정할 때 토질에 따라 많고 적은 차이를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라 때 공법은 청주와 예주의 징수액이 다르고. 예주와 양주의 징수액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세금의 정해진 양은 상 대처럼 조법을 쓰건. 주 대처럼 철법 을 쓰건 모두 수확량의 1/10을 정해진 수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세금 징수가 균등했던 까닭이며 백성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던 까닭입 니다. 채수(蔡壽, 1449년 8월 25일(음력 8월 8일) ~ 1515년 12월 12일(음력 11월 8일))
주공이 재상이 되어서 마침내 국면을 위기에서 안정으로 돌려놓고. 그 뒤 800년 지속된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주공은 과연 무슨 방법으로 이런 업적을 이루었는가? 그가 재상으로서 정치를 보좌하는데 원칙으로 삼은 것은 성실함이던가? 그가 성실함으로 보좌한 일은 과연 어떤 것인가?
신이 듣기에. 성인으로서 변화의 시기에 잘 대처한 사람으로 주공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서주 초기. 성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해 자리에 나아 가기도 전에 성왕의 숙부이자 은의 유민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관 숙 채숙 곽숙등세 감독이 난을 일으켜 수도 성주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당시 주공은 오랫동안 업적을 많이 쌓았지만 모함을 받고 동쪽으로 피해 조심조심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공이 한결같이 성실하게 처신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 진심을 안 성왕이 교외에 나아가서 직접 주공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쓰러졌던 벼와 나무가 모두 일어나고 풍년이 들었습니다. 주공이 성왕과 백성을 대고를 비롯한 훈계 여덟 편으로 깨우쳐서 완고한 백성이 모두 교화됐습니다.
임금 된 사람은 몸가짐을 반듯하게 하고 깨끗이 하며 복장 을 갖춰 몸을 수양하는 도리는 어떻게 하면 성실하게 따라 갈 수 있는가, 헐뜯는 말을 멀리하고 여자를 멀리하며 재화를 천하게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겨서 어진 사람을 권장하는 도리는 어떻게 하면 성실하게 따라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끊임없 이 지극히 성실하고 쉬지 않으며, 한결같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히 하되 그 일을 어럽다고 여기고 임금의 지위를 신중하게 지키 며, 오직 조화를 추구하고 오직 한결같은 마음을 지닌다면 어느 시대엔들 유신의 들판에서 받을 갈던 이윤이나 담장 쌓는 공사장에서 일하던 부열처럼 세상에 능력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없겠습니까? 이자(李耔, 1480년 ~ 1533년)

기술자를 불러 모으고 관리해 기꺼이 일하게 하고 업무를 맡게 하자면 어떤 방법이 좋겠는가?
서경의 '무익한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법으로 삼아 여러 궐의 제도 가운데 규정에 어긋난 것은 사이사이의 전각을 줄이고 명분이 없는 완상물 일체를 없애면. 일은 간략해지고 결실은 쉽게 이루며 노역은 성취되고 실적은 쉽게 거둘 것입니다. 이른바 기술자를 '위로하고 오게 하며' '따르고 순종하게 하는' 방법은 아랫사람은 충실하고 윗사람은 사정을 알아주는 도리를 다하는 것뿐입 니다. 양응정(梁應鼎, 1519년 ~ 1581년)
인재의 성쇠는 국가의 흥망과 관련되어 있다. 옛날부터 제왕은 어김없이 인재를 기르는 데 최선을 다 했다. 3대 이전은 더할 나위 없고. 애오라지 한.당:송을 말하자면 도덕을 자기 임무로 삼고 국가의 치란에 관여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 가?
인재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으니 인재를 일으키는 방법은 가르치고 인도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훌륭한 교화는 저절 로 행해지지 않으니 훌륭한 교화는 참다운 덕을 닦는 데 달려 있습니다. 참다운 덕을 닦아서 도리를 밝히는 근본으로 삼고, 훌륭한 교화를 시행해 사람을 진작하는 방책으로 삼는다면 인재를 기르는 방법 이 반은 이루어진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홍성민(洪聖民, 1536년 ~ 1594년)

AI시대를 맞아 대학입학시험 제도를 바꾸는 논쟁중이다. 한번 서울 성균관을 방문하고 조선시대 논술시험 과거시험을 참고하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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